풀사이드_

Vhoky 2005-06-01 (수) 10:39 21년전 1274  



수영이라는 스포츠에는 분명한 구획이 필요하다. 손끝이 풀의 벽에 닿는다. 그와 동시에 그는 돌고래처럼 수중에서 몸을 날려서, 순간적으로 몸의 방향을 바꾸고, 발바닥으로 힘껏 벽을 찬다. 그리고 나머지 200미터에 돌입한다. 그것이 턴이다.
만일 수영경기에 턴이 없고 거리표시도 없다고 한다면, 400미터를 전력으로 헤엄치는 작업은 틀림없이 구원이 없는 암흑의 지옥일 것이다. 턴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 400미터를 두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적어도 절반은 끝났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그 나머지 200미터를 다시 절반으로 나눈다. 그는 ‘이것으로 4분의 3이 끝났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절반…… 하는 식으로 긴 노정은 자꾸만 세분화되어 간다.
거리가 세분화 되면서 의지도 역시 세분화된다. 그러니까 ‘어쨌든 이 다음의 5미터를 헤엄쳐 버리자’ 하는 식이다. 5미터를 헤엄치면 400미터의 80분의 1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생각함에 따라 그는 물 속에서 어떤 때는 구토하고 근육의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최후의 50미터를 향해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도대체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풀을 왕복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로서는 그 분할 방식이 제일 성격에 맞았으며, 또 가장 올바른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사물이 아무리 거대하게 보이고, 그것에 맞서 나가려는 자신의 의지가 아무리 작게 보여도, 그것을 5미터씩 처리해 나가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는 50미터의 풀 속에서 배웠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형태를 취한 인식이다.



_무라카미 하루키 ‘풀사이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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