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왜 상대방이 당신의 말을 꼭 들어야 하는가? 왜 모든 일이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착착 진행되어야 할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라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 또한 열어두어야 한다. 당신도 모든 일에 있어서 남의 말을 듣고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자유가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화낼 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남에게서 가장 경계해야 할 감정은 우울감이다. 만약 상대방이 크게 분노한다면 우리는 이를 방어할 수 있다. 분노는 자극적인 에너지라서 자신에게 안 좋으리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심하게 분노하는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은 다르다. 우울한 사람의 에너지는 아주 천천히 전염된다. 무기력 또한 경계해야 할 타인의 감정이다. 한 팀원이 “잘 안 될 것 같아”, “그냥 대충하자” 등의 말을 자주 하면 팀 전체가 서서히 사기를 잃는다.
남의 기분에 영향 받지 않기 위해서는 기분의 출처를 정확히 해야 한다. 타인에게 전염된 기분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쳐내는 연습을 해보자. 남의 감정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지금 나의 기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아도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워져서, 내 안에서 흘려보내는 일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 도둑이 나도 같은 불평을 해주기를,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기를 기대할 때 과감하게 무시하라. 나 때문에 대화의 흐름이 살짝 어그러져도 괜찮다. 습관적으로 남 욕하기, 문제 있으면 남 탓하기 등 안 좋은 이야기들이 그득한 대화의 장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라
자신과 잘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다 보면 좀 더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신의 영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서서히 거리를 두고 멀어져도 괜찮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내고 교제할 권리가 있다.
그래도 이건 잊지 않으면 좋겠다. 에너지 도둑을 멀리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부정적이라는 성격의 특성은 한 개인의 일부일 뿐이며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 당신의 에너지 도둑이자 친구인 그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갇혀 인생의 슬럼프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가끔은 그가 기분 전환을 하고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친척 어른 중에 제멋대로 감정을 표출하는 자신의 성격을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다고 자부하는 분이 있었다. 그 어른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사람은 남의 성격에는 몹시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성격에는 굉장히 관대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태도에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버릇없고 방탕하게 살면서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약과인 편이다. 식당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갑질하면서 착하게 굴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인간도 봤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주위 사람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낸다.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태도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실망이 두려워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기대감을 억누른 적이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적이 아주 많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소개팅에 나가기 전날, 괜찮은 상대가 나오면 좋겠다는 기대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관계에서 느끼는 실망감은 특히 그렇다. 연인,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에 우리는 각각 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와의 교제에도 항상 ‘에너지 보존 법칙’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위해 쏟은 노력만큼 그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 오가는 감정과 노력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감정의 무게가 서로 달라지는 순간 쉽게 실망하거나 상대방을 쉽게 실망시킬 수 있다. 이런 실망감은 슬픔이나 분노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는 감정이어서,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높은 기대감을 경계해야 한다. 항상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잘해주면 나 또한 상대방에게 진실한 선의로 보답해주면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냉담하면 굳이 애써 상대방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다. 관계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방을 제대로 대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사람에게 덜 기대할 것. 내가 준만큼 똑같이 받으려고 욕심내지 않을 것. 이 두 가지가 인간관계에서 실망하지 않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내가 준만큼 똑같이 받으려는 마음은 욕심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냉담하면 굳이 애써 상대방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다.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으레 즐겁고 기뻐야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면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그게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히려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 이외의 다른 감정이 생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심리 상태가 더 걱정할 만한 일이다.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감정에서 야기되는 행동에 좋고 나쁨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친구가 몹시 우울해하고 있는 걸 보았다고 치자.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냥 기분이 별로인 건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친구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주고도 싶다. 당신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할까.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왜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못할까. 나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나에게 질문을 건네보자. 오늘 무엇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 혹은 실망스럽게 했는지 물어보자.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듯이 나와 대화하면 나의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챙기는 첫걸음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가치관을 되도록 자주 상기해야 한다. 가치관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다른 사람의 주장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되새김하다 보면 자신의 기호와 입장이 뚜렷해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내면의 평가 시스템을 단단히 만들 수 있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
친구의 고민을 상담해주다 보면 “부모님의 기대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라거나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입고 싶은 옷을 입어”라는 등의 조언을 해준다. 친구를 위해 하는 가치 판단에는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조언들을 자신에게 하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친구한테 해주는 조언을 나 자신에게 해보자. 그 조언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친한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기분을 풀어주자. 당신은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친구를 괴롭힌 사람을 찾아가 혼쭐을 내주거나 괴팍한 상사를 마구 욕하며 친구 곁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잘 위로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위로할 줄은 모른다. 마음이 힘이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운동으로 땀을 빼면서 자신을 위로해보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내가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의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을 배우자. 나의 기분은 내가 잘 알아주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챙기겠는가.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엉망진창인 것 같을 때 나를 챙겨줄 가장 따뜻한 친구는 나임을 기억하자.
자신감이 떨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억지로라도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자. 또 무기력함에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당장 두 손을 내리고 심호흡으로 냉정을 되찾자.
자신감 넘치는 자세를 취하면
실제로 더 자신감을 느끼게 되고,
웅크리고 다니던 몸을 곧게 펴는 것만으로
마음속 응어리가 작아진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해.’
‘나는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해.’
‘사람은 과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비합리적 신념은 자기 자신과 남에게 완벽함을 요구한다. 이 잣대는 너무 엄격해서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사람을 우울하고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였다.
“우리가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당신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인생은 짧고 또 길어서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가끔씩 내가 싫어지려고 할 때마다 보는 글이다. 우리는 부모님과 배우자, 친구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심지어 그들과 더 잘 지내기 위해 습관적으로 나의 진짜 감정과 느낌을 자제하기도 하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헌데 정작 자신과의 관계는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일까?
여러 사람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할 때, 매번 ‘아무거나 좋아’라고 말하면 나중에는 당신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또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하면 상대방은 당신이 정말로 괜찮고 힘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지내는 방식은 하나하나의 사소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형성된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버릇은 상대방의 관심과 보호를 받을 기회를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 행복한 일상을 산다.
상유심생相由心生. 외모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사람은 각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산다. 우리가 지나온 세월, 생각과 가치관, 심리 상태의 모든 변화 하나하나가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심리 변화는 신경전달 물질의 농도 차이를 발생시키고 근육을 만들어 표정에 변화를 만든다. 오랫동안 일정한 정서를 유지한 사람은 표정에 크게 변화가 없지만 항상 초조하고 우울한 사람에게는 ‘불안한 얼굴’이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인색하게 구는 사람은 쪼잔함이 얼굴에 비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느냐가 사람에 따라 다르듯이, 스트레스가 풀리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달리기 효과가 너무 좋아서 틈만 나면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했지만, 모두에게 들어맞는 처방은 아니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운동하라”는 조언이 무례한 이유
우울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그 종류를 무시하고 통틀어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아, 이 정도로 우울하면 우울증이겠구나’ 하고 혼자 진단을 내린다. 모두가 우울한 감정에 대해서라면 조금씩은 다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울증인 친구에게 너무 가볍게 조언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나가서 햇빛이라도 쬐어봐.”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우울증에 좋대.”
틀린 조언은 아니다. 그러나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의지가 도무지 생기지 않는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도 전쟁을 치르듯 힘들어한다. 우울증의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경증의 우울감과 우울증 증상은 완전히 다르다. 우울감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분이 우울해진 명확한 이유가 있다. 우울한 기분이 어디서 왔는지 오늘의 하루를 거슬러 올라가면, 회사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든가 가족에게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든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에는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울감을 느끼는 날에는 기분 전환이 가능하다. 보통은 하루가 너무 피곤하거나 짜증나는 일이 많아서 우울해진다 하더라도 또 다른 감정들로 그 위기를 넘긴다. 배달 음식을 시키면서 설레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증의 우울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울증 환자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기분이 몹시 가라앉아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싫다.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희망을 못 느낀다.
또다른 차이점은 우울감을 느낄 때 그 증상 때문에 학업, 직장,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우울증은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잠이 안 오거나 혹은 잠을 너무 많이 잔다.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강하게 생각하며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
기쁨도 슬픔도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은 불행할까?’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아주 행복할 것이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은 아주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행복지수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았고, 병에 걸린 사람은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예상하는 행복의 기준과 행복지수가 다른 이유는 ‘적응성 편견’ 때문이다. 적응성 편견이란 자신의 적응력이나 대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어떤 일이 인생에 미칠 안 좋은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고난에 적응하는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복권 당첨자의 즐거운 시간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그 예다.
좋은 일이 주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갑자기 승진해서 연봉이 올랐다면 아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쁨은 얼마나 오래갈까? 두세 달이 지나 인상된 월급에 적응이 됐을 때도 여전히 처음처럼 기쁠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아마 새로운 직위와 연봉은 이미 자신에게 당연한 성취가 되어서 또 다른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불리한 환경에도 어느새 적응한다
실연당한 사람들은 세상이 전부 끝나버린 것처럼 군다.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넋이 나가 있다가 그 사람 없이는 삶의 의미가 없다며 운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실연당한 사람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멀쩡히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바둑 두는 사람보다 구경꾼이 더 잘 아는 법이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당사자보다 제삼자가 더 잘 안다는 뜻이다. 실연당한 사람은 고통스러운 시기가 끝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적응력을 통해 우리는 더 크고 많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들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진다. 그들은 문제가 발생할 확률뿐 아니라 문제가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그 결과,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예컨대 이런 성향의 사람이 직장에서 실패를 경험하면 자신의 잘못은 뉘우치지 못하고 ‘다음에는 운이 좋겠지, 그러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실패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에서 찾으려고 한다. 실패 자체를 너무 가볍게 여겨서 실패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시해버린다. 그러니 다음번에 똑같은 문제 앞에 다시 서게 되었을 때 또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지나친 낙관은 머릿속을 흐리게 만든다. 비관에 치우치는 것이 좋지 않듯이 낙관도 마찬가지다. 무조건적으로 낙관을 찬양하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다. 통제하지 못할 낙관보다는 현실을 믿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함과 무력함을 느낀다. 예컨대 고등학생이 되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대학생이 되면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갈등한다. 취직을 하고 나서는 남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서 불안해하다가 중년이 돼서 살 만하다 싶어지면 또다시 은퇴 후의 인생을 고민한다. 이렇게 우리는 거의 평생 동안을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가끔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이렇게 평생 불안해해야 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불안함을 느끼는 건 당신만이 아니다. 불안함은 대개 너무 많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버릇을 버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하자. 할 수 있는 일은 잘 해내고 할 수 없는 일은 시간에 맡겨도 된다. 이를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작게 세분화하여 하나하나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좋다.
상처는 살아가는 힘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C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지긴 하지만 가족에게 받은 상처나 친구에게 배신당한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뛰어난 판단력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활발한 사교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충격적인 사건은 기억에 달라붙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기억들은 큰 성인을 순식간에 무력한 어린이로 되돌린다. 학대당한 경험과 관련된 사람이나 사물, 혹은 아무 의미 없는 사소한 행동도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힘든 거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외부로부터 오는 압력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채찍질은 피해야겠지만 강해지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이 또한 하나의 성장이며 승화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떨던 무력하고 어린 당신에게 지금의 당신은 모든 문제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고 강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연약함과 아픔은 모두 과거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도 말해주자. 현재의 당신이 이전의 아픔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게 되면 과거에 경험한 상처에 자신감 있고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잊히지 않는 것들을 굳이 지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성장해온 흔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된다. 정말 강한 사람은 상처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상처가 있지만 그것을 직시하고 이겨내 더 나은 내가 된 사람이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상처를 성장의 힘으로 바꿔보자.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들을 이겨내야 비로소 화창한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두려움에 떨던 어린 당신은 이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강한 어른이 되었다.
마음을 지배하려는 허영심을 잘 다뤄서 좋은 쪽으로 사용해보자. 지적 허영심도 괜찮고, 사회적으로 선한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키려는 욕구도 좋다. 진짜가 아닌 것을 탐하기 위해 더 이상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질투는 자신에 대한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뛰어나기 때문에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은 상대방에게 내가 ‘졌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혼자서 경쟁 구도를 만들고 마음대로 승패를 가르는 것이다.
사실 더 확실한 동기부여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비교를 통해 동기부여를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비교하자.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보다 발전했다면 그것 또한 큰 희열이 된다. 삶의 무게중심을 남에게서 자신으로 옮겨 오면 불필요한 질투에 에너지를 덜 쓰게 될 것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내 앞에서 친구가 다른 친구와 소곤거리고 있으면 내 욕을 하고 있다고 넘겨짚고, 팀원이 보고를 늦게 하면 상사인 나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우주가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는 유아적인 생각이다. 내가 내면의 움직임으로 인해 생각하고 행동하듯, 다른 사람의 행동도 그들의 내면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왜 지금 화가 난 건지, 누구의 문제인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이 일이 화를 낼만한 일인지 자문해보는 것이 좋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세상 누구에게라도 악의를 느끼듯이,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남의 마음을 섣부르게 짐작하는 태도는 사라질 것이다.
시인 소동파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보면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마음의 상태다. 자신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도 자연스럽게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찰 것이다.
지나친 자의식을 버리자.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혼과 가족생활 영역에 세계적 권위를 가진 상담가 게리 채프먼은 인간관계에서의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5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화가 났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한다.
둘째, 분노에 휘둘리지 말고 행동을 통제한다.
셋째, 분노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넷째, 선택 가능한 방안을 분석한다.
다섯째, 건설적인 조처를 취한다.
누구든지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그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 일에 절대 분노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항상 마음이 평온하다고 해서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화내고 분노를 잘 처리하면 오히려 상대방과 관계가 더 깊어지기도 하고, 분노는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나의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끔씩 사람들과의 모든 만남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꾸만 세상이 싫어진다. 나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지고 세상의 높은 담벼락에 가로막혀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에는 가면성 우울증 환자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와 달리 가면성 우울증 환자는 겉으로는 매우 밝고 긍정적이며 어두운 그늘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고, 유머러스하고 정이 많으며 남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도 있다.
가면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대부분 위장의 달인이 되었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이상한 점을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기를 꺼리는데, 나는 밝고 재밌는 사람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일종의 ‘캐릭터 설정’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캐릭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즐겁지 않은 자신을 드러내길 거부하고 습관적으로 즐거운 척 연기를 한다.
“우울하다는 건 나약하다는 의미잖아. 다른 사람이 내가 우울증이란 걸 알면 날 어떻게 보겠어? 절대 내가 우울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그나마 웃고 있어야 날 좋아해줄 거야. 웃지도 않는 나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세상에 날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다못해 하소연할 사람도 없다고.”
그들은 진짜 모습을 감춰야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과거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무시당했거나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을 확률이 높다. 사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일이지만 가면성 증후군을 겪는 이들은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우다.
나는 마음을 주로 물에 비유한다. 흐르는 물은 때로는 맑고 투명하고, 때로는 탁하고 더럽다. 사람의 마음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자꾸 자신을 억누른다면 흐르는 물을 댐으로 막아 저수지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이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다. 조금씩 수위가 높아진 우울한 감정이 넘치기 시작했다면 댐은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