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5 
그래 만약 자카르타 가면 월급은 많이 주겠지만, 코퍼레잇 세일즈 해야되고 인하우스 살면 주요 고객이나 행사 있을때 내려가서 인사 해야하고... 업무는 더 힘들 수도 있으려나? 사실 지금 나트랑은 업무가 힘든건 없는데. 퇴근 후, 주말에 연락도 안오고. 진짜 도섬만 바꼈으면 좋겠네.
08-04 
자카르타에 자리가 났다고 저스틴 형한테 연락이 왔다. 나 자카르타 가야하나? ㅎㅎㅎ
08-03 
그렇다. 아름다운 나비를 보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비는 거기에 없다.
과거에 괴로워하지 말자. 그 아름다웠던 시절은 이미 끝난것이다.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08-03 
예를 들어 보자. 당신에게는 전남편이 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 그에 대해서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누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싫어. 이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어도 그건 날 불편하게 해!’ 이것은 객관적인 기억에 관한 말이 아니다. 이것은 명백히 삼스카라이다. 당신은 남편과 이혼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이혼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마음속에서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 그가 참석할 것 같은 파티에도 나가지 않는다. 당신은 이런 인상을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고, 결국은 아직도 전남편을 붙들고 씨름하는 대체우주를 지어냈다. 정상적인 기억은 이렇지 않다. 정상적인 기억은 얌전하다. 그것은 컴퓨터의 메모리와 같아서, 제멋대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풀어내야 할 억압된 에너지가 없다. 정상적인 기억은 당신이 필요로 할 때만 떠오른다. 그것은 평생을 두고 출몰하며 당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중에서
08-03 
나비는 당신의 팔에 사뿐히 내려앉고,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이어서 당신은 절로 거기에 의식을 집중한다. 나비가 다시 날아가 버릴 때, 당신은 그것이 싫어서 의지력을 사용하여 그 마음속 이미지를 붙잡는다.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집착이다. 나비 자체는 날아가 버렸으니 붙잡아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은 마음속 나비의 정신적 이미지를 붙잡아 놓으려고 애쓴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중에서
08-03 
최근에 집에서 기계로 간단하게 혈당을 재고 있다. 정상이 100 이하인데 나는 100이 살짝 넘어서 걱정이다. 평균 103정도?
08-03 
월요일 오전. 출근했다. 그래, 짤리고 직장이 없던 그 때의 암울함을 생각하며 이번주도 잘 지내보자. 화이팅이야!
08-01 
토요일. 오늘 집에서 본 영화. 총을 든 스님. 너무나도 아름다운 부탄의 모습과 불교, 소중한 전통, 변화의 바람. 민주주의와 투표.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화.
07-31 
붓다는 인생이란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그가 비관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인생은 고해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병자든 건강한 사람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상관없다. 고통받지 않는 순간도 분명 있긴 하지만, 일어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은 그저 큰 탈 없이 살기만을 위한 발버둥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시점에 이르면 당신은 자신이 평생 해 온 일이란 모두가 그저 큰 탈 없이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중에서
07-31 
죽음을 두고 일부 사람들이 그토록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다는 듯, 그들은 자신을 집과 자동차와도 동일시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물건들에도 자아 감각을 투사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 물건들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내적 성장의 길을 가다 보면 당신은 더 이상 그런 외부의 대상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당신은 내면의 더 깊은 자아의 느낌과 하나가 된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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